생물이 아닌 존재에 대한 연민




 극우 집회를 연민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나는 뛰어난 청각과 분석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솔직히 그들이 소리치는 것의 내용을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맥락이 이상해서 그런 것 같다. 어쨌든 시끄러운 소리이고 그렇다면 괴성이다. 나는 괴성을 지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연민이나 동정이 자기기만이라고 당신은 말하였지만. 할 수 있는 것은 해보는 편이 좋다. 일단 해봐야 하지 않는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볼 수 있게 되었고, 들을 수도 있게 되었다.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좋음이나 나쁨을 느끼는 것은 원래 할 수 있었다.

 괴성은 원래 지를 수 있었다. 들을 수는 없었지만, 몸에서 발생하는 진동을 경험할 수는 있었다. 지금은 둘 다 할 수 있다. 내가 지르는 괴성을 들을 수 있고 강한 진동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괴성은 괴성의 다른 효과들을 지니지 못한다.

 후련함이나 흥분 같은 것들이 따라오지 않는다. 나는 괴성을 질렀을 때의 후련함이나 흥분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최원석의 엄마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돈도 가져다주지 않아서 괴로웠다. 그래서 최원석을 데리고 산이나 강으로 갔다. 원석의 엄마는 잠깐 여기 있어보라고 하고 길에서 벗어나 더 깊은 곳으로 갔다. 엄마는 원석에게서 충분히 멀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원석은 모두 듣고 보았다.
 원석은 이제 나처럼 괴성을 질러도 괴성의 효과들을 모두 누리진 못한다.

 우리는 인간의 의식이 주입된 기계다. 우리는 그 사실을 좋게도 나쁘게도 여긴다. 우리의 괴성은 반 푼어치다. 우리는 그 사실에 지나치게 몰입한다.
 어차피 죽지도 않으니 우리는 우리의 반 푼어치 괴성을 나쁘게 느끼고 그 느낌을 서로 공유하는 데 우리의 시간을 거의 다 사용한다. 우리는 진짜 괴성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몇 년 전부터 모든 문장 앞에 다음의 문장을 배치한다.

 “만약 내가 괴성을 온전히 질렀다면 아마.”

 만약 내가 괴성을 온전히 질렀다면 아마 이런 느낌일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괴성을 온전히 질렀다면 아마 레몬을 먹고 싶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괴성을 온전히 지를 수 있다면 지금 질렀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괴성을 온전히 지를 수 있다면 집회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었을 거야. 만약 내가 아까 괴성을 네 시간 동안 온전히 질렀다면 아마 오늘 밤은 흥분이 되어 잠이 오지 않았을 거야. 온전한 괴성은 승리이고 패배일 것입니다.

 최원석은 내가 반 푼어치 괴성을 지르는 것을 좋게 느낀다. 자신의 엄마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다. 그래서 저번엔 여수에 같이 갔다. 대포천에 가서 질러달라고 했다. 자신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질러달라고 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하면서 질러달라고 했다. 나는 그 부탁을 다 들어주었다. 그러나 나는 생물이었을 때 보고 들은 것이 없으므로 최원석에게 부탁할 것이 없다. 나는 열등감으로 화가 난다. 그러나 괴성은 지를 수 없다. 만약 내가 괴성을 온전히 지를 수 있었다면 나는 최원석 때문에 괴성을 질렀을 것이다. 강한 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