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어렸을 때 읽은 만화에 따르면, 지옥과 천국에서는 음식을 먹을 때 길이가 1미터쯤 되는 긴 젓가락으로만 먹어야 한다. 지옥 사람들은 젓가락이 너무 무겁고 긴 탓에 음식을 집어 입에 넣지 못해서 항상 굶기만 한다. 천국 사람들은 서로에게 먹여 주기 때문에 웃으면서 식사를 즐긴다. 천국과 지옥은 실상 똑같은 곳이고, 사는 사람만 다르구나. 그 만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내가 당연히 천국에 갈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만화에 그려져 있는 천국의 사람들이 별일 아닌 것에도 계속 웃고, 할 필요가 없는 말이나 칭찬만 하고, 남이 집어 주는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 것을 보면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 같았다. 그렇다고 지옥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느꼈던 것도 아닌 게, 매일 밥을 못 먹었으면 가끔은 협동할 만도 한데, 욕심이 많고 이기적인 게 아니라 그냥 멍청한 놈들 같았다. 죽으면 큰일 나겠네. 물론 나는 지옥이 싫지 않고, 지옥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거의 무한에 가까울 만큼 많은 지옥이 있어서 지옥에 가면 계속 새로운 지옥으로 여정을 떠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저승에 관심이 많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 지옥에 가면 천국에는 영원히 갈 수 없다고 믿고 있다는 거고, 젓가락 얘기에서 알 수 있듯이 천국과 지옥이 실상 별반 다르지 않다면…… 그렇게 규칙을 만들어서라도 차별점을 줘야 되는 거 아닌가, 나도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니까 천국이 지옥보다 고지대에 위치하기 때문에 망원경으로 지옥들을 내려다보고 구경할 수 있지만, 지옥 사람들은 아무리 올려다봐도 천국 구경을 제대로 못 하는 거다. 어쩌면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을 거다. 지옥에 살면 지옥평평설 같은 걸 믿을 수밖에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