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추운 극장으로의 초대

 새벽에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불 꺼진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서 고양이의 턱 밑에 손을 넣었습니다. 그러고도 앞날이 불안하곤 했습니다. 고양이가 행복한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과연 이 고양이를 기쁘게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확실한 건 내가 기분에 너무 휩쓸리는 인간이고. 예전보단 많이 중심을 잡고 있지만. 그래도 균형을 잡는 일을 매우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것. 추위에 약하고, 약 기운에 약하고, 화내는 사람에게 약하고, 유혹에 약한 사람. 미래에 대한 대책이 별로 없고, 너무 많은 걸 미루기만 하는 사람. 세상엔 얼마나 할 일이 많은가요. 모든 일엔 끝이 없는데, 모든 일엔 끝이 있어서, 그래서 다들 괴롭겠지만. 저는 일머리가 너무 없어서 항상 사람들에게 혼나는 사람이었기에.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계속 조금씩 어딘가로 뒤처질 것 같아 두렵습니다. 사라지고 싶은 새벽입니다. 이래서 새벽에 깨어 있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래도 고양이가 있어서 사라지고 싶지 않은 새벽입니다. 그럴 때면 아직 책으로 엮이지 않은 <항상 조금 추운 극장>의 원고를 읽어보았습니다. 스마트폰의 작은 액정으로 읽었습니다. 처음으로 시의 수록 순서도 제가 정한 시집. 이걸 읽고 있으면 은근히 슬펐습니다. 은근한 슬픔은 끔찍한 슬픔을 잠재우곤 했습니다. 첫 시집을 쓸 때에 저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었고, 두 번째 시집을 쓸 때에는 먼 미래에 읽어볼 만한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조금 추운 극장>을 쓸 때에는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독자들을 떠올리면서 시를 썼습니다. 우리가 외롭기를 바라면서 시를 썼습니다. 조조 영화나 심야 영화를 보러 극장에, 시네마테크에 들어갔는데, 극장에 관객이 나 하나뿐일 때의 느낌. 사람이 북적대는 학교나 회사에서 잠시 아무도 없는, 닫힌 옥상으로 통하는 층계에 서 있다가 오는 느낌. 그러니까 혼자여도, 외로워도 괜찮은 느낌. 외로움이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안심이 되는 슬픔. 하지만 슬픔. 너무 복잡하고, 누구의 것도 아니라서 설명할 수 없는 것. 그것이 <항상 조금 추운 극장>입니다.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내일은 어디에 갈 건가요? 거기로 시집을 데려가세요. 그리고 그곳을 조금 춥게 만드세요. 거긴 지금 언제입니까? 여긴 또 한 번의 새벽이었습니다.